소프트웨어 커리어 회고
눈 깜짝할 사이에 2026년 1분기가 지나버렸다.
어제 회사에서 분기 리뷰와 타운홀을 진행했다. 이번 분기에 진행했고 마무리했던 여러 프로젝트들을 하나씩 돌아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참 많이 성장했구나. 엔지니어로서도, 회사의 구성원으로서도 많이 성장했구나.
IT 업계에 몸담은 지도 어느덧 만 4년이 넘었다. 시간은 정말 금방 흘렀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4년 전의 나와 같은 기준으로 일을 바라보지 않는다.
커리어 초반의 나는 꽤 단순한 사람이었다. 일반 사용자 영역의 문제를 푸는 회사에 가고 싶었던 이유도 아주 기술적이었다. 많은 사용자의 트래픽을 감당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서버 개발자로서 그런 문제들을 직접 풀어보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그런 경험을 쌓는 것이 좋은 커리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에는 “왜 내가 이 문제를 풀고 싶은가”보다는 “이런 역량을 갖추면 어떤 회사에서든 경쟁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분명 틀린 선택은 아니었지만, 내 안의 “왜”는 충분히 단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녔던 회사들에서 얻은 것은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했던 것은 좋은 개발자들과 함께 일했던 경험이다. 내가 실력이 뛰어나다고 느꼈던 개발자들은 대체로 엔지니어링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엔지니어링은 단순히 코드를 잘 짜는 능력이 아니다. trade-off를 늘 염두에 두고, 장애와 트래픽, 운영의 복잡성을 경험 속에서 배우고, 컴퓨터 사이언스 지식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결론을 만들어내는 사고방식에 가깝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나는 기술보다 더 넓은 것을 배웠다. 문제를 다루는 태도, 선택의 기준, 그리고 결국 좋은 판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론 그 시간들이 늘 자신감을 주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정말 작아지는 순간들도 많았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나는 왜 저만큼 생각하지 못할까, 그런 생각에 괴로웠던 적도 많았다. 회사 생활 자체가 힘들다고 느낀 적도 있었고, 팀원과의 불화도 있었다. 내가 기대한 만큼 내 역량이 나오지 않아 스스로를 답답하게 바라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조금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간들은 나를 꺾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정확하게 보게 만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더 크게 보게 된 것은 사람보다 구조였다. 일을 하면서 책임감 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 문제의식은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런 태도를 방치하고 반복시키는 것 역시 조직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 한 명이 아니라 회사와 조직이다. 그렇다면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도 그 조직의 방식이고, 그 안에서 내가 배우게 되는 것도 결국 조직이 가진 구조와 문화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좋지 않다고 느꼈던 것들을 돌아보면, 결국 빠질 수 없는 것은 조직과 조직문화였다. 사람은 조직을 만들지만, 동시에 조직은 사람을 만든다. 그래서 채용이 중요하고, 문화가 중요하고, 정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조직은 멈춰 있으면 안 되고, 기존에 속한 사람들도 계속해서 변화해야 하며, 변화에 맞춰 서로를 정렬해나가야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회사는 그렇게 움직이지 못했다. 변화의 필요를 알면서도 익숙한 방식 안에 머물렀고, 문제를 보면서도 쉽게 바뀌지 못했다.
나는 한때 대기업에서 일했고, 그곳을 떠난 이유 역시 기대와 현실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스타트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 안에서 내가 기대했던 무언가를 충족해보고 싶었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더 본질적인 질문을 하고, 더 유연하게 바뀌는 조직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언제나 충족된 것은 아니었다. 규모가 작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조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작아도 충분히 낡은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 부분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 생각하고, 더 길게 써보고 싶은 주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회사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단순히 주어진 개발 업무만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 더 잘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먼저 고민하고 만드는 사람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성 도구를 도입하고, 보안 리스크를 줄이고, 운영 가능한 내부 시스템을 만들고, 불필요하게 중요해진 것들을 다시 정리하는 일들을 하면서 나는 점점 기술 그 자체보다 조직 전체의 움직임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찾아서 진행하고,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없어도 조직에 필요한 형태를 만들어 보여주려는 태도 역시 그 안에서 생겨났다.
결국 내가 요즘 가장 자주 붙잡는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조직이 더 빠르게, 더 건강하게, 더 함께 움직일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그 질문을 중심에 두고 일하고 있다. 엔지니어로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보고 싶고, 기술만이 아니라 조직 전체에 이점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싶다. 그 과정에서 불편한 말도 해야 하고, 피드백도 받아들여야 하고, 계속 배우고 개선해야 한다는 것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나는 더 배우고 싶다. 그리고 더 확장 가능한 형태로 발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렇게 살고 싶다.